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닌그라드 공방전 (문단 편집) == 기타 == [[푸틴|현직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 공방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확히는 가족 이야기인데, 푸틴의 가족 역시 공방전 당시 갖은 고생을 겪었다. 아버지는 독일군의 포격으로 한쪽 팔을 잃었으며,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은 전쟁통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참극을 겪었다고 한다. 둘째형 빅토르는 레닌그라드 봉쇄 중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물론 푸틴은 전후에 태어난 늦둥이였기에 전투를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았다. 푸틴의 어머니는 독일군조차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그들을 증오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정했다고 한다. 전쟁의 참혹함이 공격당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공격하는 자도 지옥에 빠뜨린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강구트급 전함]]이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성능 이상의 전과를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래 [[제1차 세계 대전]] 출신인 이들은 초기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전간기]]에 재개장을 거쳤음에도 태생적인 설계 때문에 진즉 퇴역해야 했던 할머니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강구트급 1번함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와 2번함 [[마라(전함)|마라]]는 레닌그라드의 발트함대 군항에서 발트함대를 지휘하며 적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기함인 마라가 레닌그라드 함락에 최대의 걸림돌이라 판단한 독일군은 슈투가 편대를 파견해 공격했지만 마라는 초기 드레드노트급이라도 명색이 전함인 데다 견고한 방공망까지 합쳐져 유효타를 입히지 못했다. 이에 루프트바페는 최후의 수단으로 [[한스 울리히 루델]]을 불러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를 대파하고, 전용 1.4t 폭탄을 목숨 걸고 급강하폭격을 시도해 마라에게 맞춰 침몰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마라는 배의 3분의 1이 날아가고 해안가에 침저한 상태에서도 몇몇 포탑은 가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소련군은 마라를 콘크리트로 그 자리에 고정시키고 육군 관측반이 보내오는 좌표로 포격을 계속 퍼부으며[* 마라의 관측장치는 배가 폭파될 때 파괴되어 사용할 수 없었다. 포탑만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굴린 소련군의 근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레닌그라드가 해방되는 날까지 인민의 적들에게 2천 발에 가까운 '''인민의 불벼락'''을 선사했다. 독일군은 어렵사리 급강하폭격을 성공시켜 가라앉힌 배가 다시 물 위로 기어올라와 포격을 퍼붓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2년간의 포위전 동안 이들은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 불리며 레닌그라드가 포위전을 끝까지 버텨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마라의 12인치 주포는 당대 해전에서는 한물간 취급이었지만, 305mm의 체급은 항구에 박혀 레닌그라드를 방어하는 데에는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덕분에 마라는 해전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전함이 요구하는 전략병기로서의 역할을 한계 이상으로 해낸 사례로 꼽힌다.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 또한 대파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강구트급은 레닌그라드 해방 이후에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강구트급은 [[러시아 내전]] 당시에도 페트로그라드(당시 레닌그라드의 명칭)가 돌파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레닌그라드를 2번이나 구해주었다.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러시아 내전에서 페트로그라드를 구해준 배가 독소전에서 늙은 몸을 이끌고 파괴된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들을 지켜주는 모습에 엄청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사기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004년작 영화 [[다운폴]]에서 삭제장면중 소년병 페터가 도망을 가다가 어느 소련 군인과 마주치는데 해당 소련 군인은 페터가 소년이라는 이유로 권총을 버리고 빨리 도망가라고 한다. 하지만 당황한 페터의 권총에 맞고 쓰러진다.[* 해당 소련군인은 권총을 맞고 쓰러지자 러시아어로 [[쌍욕]]을 한다.]해당 소련 군인의 군복을 보면 레닌그라드 방어 훈장를 패용하고 있다. 당시 소련군들 사이에서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살아남았고 해당 훈장을 수여받았다면 영웅, 전설로 인정받았다. 해당 소련 군인은 독일군에게 적개심을 충분히 가질만 하지만 인정을 베풀다가 권총에 맞았다. 만약 레닌그라드에서 죽을고비를 넘기고 승리를 맛보기전에 패터의 권총을 맞고 죽었다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분류:독소전쟁/시가전]][[분류:1941년 전투]][[분류:1942년 전투]][[분류:1943년 전투]][[분류:1944년 전투]][[분류:상트페테르부르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